“가끔 두려운 건 내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거야.”라는, 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해준 친구의 말로부터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어.”라는 고백에 자신이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던 친구와의 대화도 기억난다. 그 즈음 전시에서 썩어가는 강이 ‘병든 채 비밀스럽게 죽어간다’는 표현을 보곤 조용히 죽어가는 것은 강뿐만이 아닐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프로젝트의 제목을 정할 수 있었다.
<조용히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기념비>는 다양한 정신질환과 정신적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지만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기분장애 등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실제로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프로 이상, 즉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우울감과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정신건강은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질환의 개인적 체험은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는다. 대신 이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일기장 속에서, 익명 커뮤니티에서, 혹은 자신의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사라지고는 한다. 쓸모있는 인간이 되기를 종용하는 사회에서 존재할 가치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런 정신의 고통은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면서도 잘 기억되지 않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기념공원과 기념비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신과 삶을 정의하게 된다. 또 수많은 사건 중에 ‘무엇을 기억하느냐’의 문제는 곧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냐’는 가치가 개입된 판단이기도 하다. 기념비 또한 전통적으로 어떤 사건 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행위로서 건립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주로 전쟁의 종식이나 댐 건설과 같은 커다란 사건을 주로 기억하기 위해 건립되었던 기념비는 때로 평화와 자유 같이 더 포괄적인 것들을 기념하기도 해왔다. 우리 또한 이 프로젝트에서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 존재가 지워지는 정신질환과 그에 수반되는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죽어있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삶을 기념비를 세워 기념하고자 한다.
끊임없이 복제될 수 있는 웹의 특성상 이 기념비는 모두를 한 번에 기념하는 전통적인 거대한 비석이 아니라, 개개인을 위해 매번 새롭게 세워지는 기념비들이 모인 기념공원에 더 가깝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줄 때마다 개인을 위한 맞춤 기념비가 세워진다. 한데 모인 기념비들은 숨겨져 있던 개인의 서사를 드러내고 하나의 맥락을 말한다. ‘우리의 고통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더 나아가 비문 작성은 그 자체로 고해의 기능을 하는 카타르시스적 경험이면서, 기념공원을 둘러보는 산책자에게는 (의외로) 이러한 일을 겪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위로를 주는 공동체적 체험을 하게 한다.
웹사이트라는 공간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영화 <화양연화>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산꼭대기의 나무구멍 안에 속삭이고 진흙으로 덮는 방법이 나온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주인공은 영화의 말미에 슬픈 사랑을 끝내고 난 후, 앙코르와트의 사원에 방문해 구멍 안에 비밀을 속삭이고 치유를 기원한다. 어쩌면 이 기념비가 당신의 구멍이 될 수 있기를. 고통받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바친다.